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접대의 관습 (문단 편집) === 몽골 === [[몽골인]]들에게도 비슷하게 '손님은 누가 됐건 해하지 않고 후하게 대접한다'는 풍습이 있었다. 손님으로 대우하기 싫으면 내쫓도록 되어 있었으나 일단 받아주면 밖으로 나갈 때까지는 안전은 보장해줄 의무가 있었다. 심지어 손님에게 해를 끼치거나 대접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목이 날아가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타타르족의 예수게이 살해에 테무친(칭기즈 칸)이 그토록 큰 원한을 가진 것도 이를 대놓고 어겼기 때문이다. 결국 타타르족은 얼마 지나서 그 대가를 아주 처절하게 치른다. 그런데 타타르족은 이 관습을 어기는 일이 많았는지 칭기즈 칸의 증조부인 [[암바가이 칸]] 역시도 선대인 [[카불 칸]] 시절부터 대립해온 타타르족과 화해하기 위해 결혼 동맹을 추진하려고 했는데 타타르 쪽이 직접 딸을 데리고 온 암바가이 칸을 금나라에 팔아넘겨 죽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 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단위로도 적용되었다. [[호라즘 왕국]]은 몽골이 친선으로 보낸 사신과 상인들을 대접하기는커녕 이들의 재물을 강탈하고자 첩자로 몰아 모두 죽였기에 몽골로부터 잔혹한 보복을 당하고,[* 사실 호라즘 왕국 쪽에서 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처벌하고 배상금을 지불하면 적당한 선에서 끝날 수도 있었는데 하필 그 사람이 당시 [[테르켄 카툰|호라즘 왕국 태후]]의 친척이라 처벌도 받지 않았고, 한술 더 떠서 배상은커녕 몽골 사신들의 수염을 밀어버리는 도발까지 감행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수염이 남성성의 상징이던 시절에 수염을 밀어버린다는 건 보통 모욕이 아니었다. 사실 호라즘도 나름 당대에 명성을 떨치던 강국이었기에 고자세로 나온 것이었겠지만 알다시피 몽골은 아시아를 평정하고 머지않아 유럽 연합군까지 밟아버릴 정도의 대제국이었다.] [[고려]] 또한 미제 사건이라 진범은 알 도리가 없지만[* 고려 측은 이를 여진족의 소행으로 보았으나 아직까지는 누가 저질렀는지 밝혀진 것은 없다.] 몽골에서는 [[저고여 피살 사건]]을 고려가 일으킨 것이라 생각했기에 [[여몽전쟁]]의 신호탄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 법에 손님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어 환영한 손님은 독살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도 몽골 유목민 [[게르]]에 불쑥 찾아가도 애초에 관광객용 천막이라면 돈을 받고 재워줄 것이고, 일반 유목민 천막이면 십중팔구는 공짜로 먹이고 재워준다. 인터넷상에도 경험담은 널리고 널린 편이지만,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무작정 믿는 것은 위험하니 웬만하면 관광객용 천막을 이용하자. 앞서 원인의 1번 문단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몽골에서는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이는 경향이 있었다. 손님 또한 주인이 주는 음식과 술을 사양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지라, 몽골 음식과 술이 입에 맞지 않는 외국인들이 몽골인의 집에 손님으로 갔다가 대판 고생하기도 한다. [[열하일기]]를 쓴 선비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이 사행길 중에 잘못 들어간 조폭 소굴에서 독주를 사발로 원샷하고 몽골인 장사들에게 존경받은 일화에서처럼 옛날 동북아 유목세계에서 주량과 식사량이 '사내다움'의 척도였던 이유다. 지금도 몽골인의 손님 접대에는 대량의 술이 빠지지 않으며, 특히 주인이 손님이 마음에 들어 내놓는 이별주(라지만 실은 가지 말고 쓰러져서라도 며칠 더 있다 가라는 뜻)은 다 마시고 가든지, 최소한 뻗을 때까진 마시는 게 예의. 흥미로운 부분으로 한끼줍쇼에 한국인과 결혼한 몽골인 주부가 나온 적이 있는데 손님은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된다고 식사를 권해서 이경규와 임수향이 미션을 해결한 일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